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쿡 (문단 편집) == 3차 항해와 비극적 최후 == 1776년 쿡은 같은 임무로 자원하여 레볼루션호, 디스커버리호로 남극으로 향한다. [[희망봉]], [[타히티]]를 거쳐 유럽인으로선 최초로 [[하와이]]에 도달한다. 거기서 보급을 받으려 했고 선원과 제임스 쿡은 원주민들에게 대접받고 환대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을 신으로 모신 원주민들은 점점 술만 축내고 원주민 여자만 탐하는 신들에게 의구심과 불만을 품게 된다. 결국 아래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다양한 이유로 쿡을 포함한 선원 5명을 사살되고 그의 항해와 임무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하와이에 상륙한 후 하와이인들이 물건을 가져간 걸 다시 뺏어오기 위해[* 당시 영국법은 절도를 굉장히 엄중히 다룬 데 비해 하와이인을 비롯한 태평양 원주민들은 절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서 자주 충돌이 일어났다. 다만 이러한 기록에 대해서는 백인우월주의적 관점이라고도 하고 실제 쿡의 선원들이 개판쳤다는 견해도 있다.] 당시 하와이의 족장인 칼라니오푸를 인질로 잡으려했다가 실패하고 케알라케쿠아 만에서 배로 도망치던 도중 후두부를 강타당하고 쓰러지며 낙오된다.[* 이 장면을 '세계 역사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원주민들이 쿡 선장의 머리에서 나온 피를 보고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속은 걸 깨닫고 선원들을 공격했다고 묘사란다. 다만 이 책에서는 쿡 선장과 그 일행을 억울하게 묘사한 면이 꽤 있는 편이다.] 이후 쿡의 배로 한 척의 보트가 자루를 전달하는데, 그 안에는 뼈가 말끔히 제거된 3~4kg짜리 살덩어리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당시 하와이 원주민들은 적의 우두머리 시신을 불태우고 신성한 힘이 깃든 뼈를 발라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원주민들은 해안가에 검게 그을인 팔다리와 머릿가죽, 잘린 두 손을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제임스 쿡 사체의 일부였던 것이다.[* 외국에서 제임스 쿡과 관련된 기사나 문서의 답글을 보다보면 가끔 쿡의 성(Cook) 때문에 원주민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이름에 걸맞는 최후를 맞았다는 개드립이 나올 때가 있는데, 쿡이 원주민에게 살해당한 건 틀림없지만 잡아먹혔다는 기록은 없으며 [[고인드립]]이다.] 그렇게 돌려받은 쿡의 시신 조각들은 항해사들이 전부 모아서 바다에 던져 [[수장(장례)|수장]]하고[* 영국에서는 선장이나 항해사가 바다나 타지에서 죽으면 수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랜시스 드레이크]]. 물론 [[호레이쇼 넬슨]] 같은 경우는 예외이지만 대부분 선장이나 항해사들은 그렇게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후 케알라케쿠아 만에는 제임스 쿡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제임스 쿡이 하와이에 상륙했던 때가 하와이 풍작의 신인 로노를 위한 축제기간과 겹쳐서 쿡이 로노의 화신으로 숭배받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이에 반발하는 학설도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하와이 원주민들이 제임스 쿡을 [[불사신]]으로 믿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렇다 할 근거는 없다. 제임스 쿡의 배에서 일등 항해사를 맡았던 윌리엄 블라이는 나중에 [[바운티호의 반란]]으로 유명해진 바운티호의 선장이 된다. 1984년의 영화에서는 타히티 추장이 블라이 선장에게 제임스 쿡은 어디갔냐고 하니까 죽었는데 살았다고 구라를 쳐서 의심의 눈총을 받는 장면도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